[주일설교, 2020.06.14, 김진영 담임목사] 고난과 괴로움을 대하는 신자의 자세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0년 6월 14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고난과 괴로움을 대하는 신자의 자세 |
| 성경 본문 | 사무엘상 1장 1-11절 |
| 함께 읽은 말씀 | 자막에서는 회중과 함께 교독·낭독한 구절이 확인되지 않는다. 설교 중 인용하신 말씀은 본문 4절과 11절, "누가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것입니까"라는 시편 말씀,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와 먼저 화목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환난에 관한 야고보서 말씀이다(장절은 7장에 찾아 달았다). |
| 영상 | https://youtu.be/euJfSvU_-1o (설교 약 28분 + 기도, 전체 약 32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엘가 나·얘가 나·애가 나"→엘가나, "분 있나·분이 나·본인 나·군인 나"→브닌나, "3회 설·3회에서·사무 에서"→사무엘서, "어 내·언어·언외"→은혜, "고로 나·코로나 1구"→코로나·코로나19)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 중에 "사무엘서를 시작하면서"라는 말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설교는 사무엘서를 차례로 살피는 연속 설교의 첫 부분으로 보입니다.
자막은 "세 사람의 … 인물이 있습니다"라는 문장 중간에서 시작합니다. 그 앞의 성경 봉독이나 도입 말씀은 자막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세 사람 | 본문에는 세 사람이 있다. 중심은 한나이고, 그 곁에 남편 엘가나와 브닌나가 있다. 때는 사사 시대다. |
| ② 엘가나 | 타락한 시대의 경건한 사람이고, 한나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자상한 남편이다. |
| ③ 브닌나 | 하나님과 남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한나를 원수로 여기고, 성소에 올라가서까지 조롱한다. |
| ④ 뜻밖의 질문 | 두 사람 중 누가 한나에게 더 유익했는가? 뜻밖에도 브닌나다. 남편의 위로에 머물렀다면 사무엘은 없었다. |
| ⑤ 서원 기도 | "아들 한 번만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서원의 내용이 한나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 준다. |
| ⑥ 신앙생활의 신비 |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나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한다. 은혜와 축복은 환난의 옷을 입고 올 때가 훨씬 많다. |
| ⑦ 사사 시대의 두 가정 | 300년의 타락 속에서 성경은 보아스와 룻, 엘가나와 한나를 보여 준다. 그들을 통해 다윗과 사무엘이 온다. |
| ⑧ 한나의 도전 | 환난과 질병이 있는가? 남편의 위로에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데까지 나오라. |
| ⑨ 코로나 | 하나님은 코로나와 싸우지 않으신다. 코로나를 섭리하시고 주장하신다. 왜 이 시기를 교회에 허락하셨는가? |
| ⑩ 예배를 돌아봄 | 내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였는가. 온라인 예배가 길어질 때 파고드는 연약함. |
| ⑪ 교회의 생명 | 다른 활동이 다 없어져도 교회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예배다. 삶 전체가 예배다. |
| ⑫ 결론 | 코로나가 끝났을 때 한나처럼 "이 시기가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찬송하는 교회가 되자. |
3. 결론 — 코로나가 끝났을 때 한나처럼 고백할 수 있기를
한나를 주목해 보라
- 한나는 환난과 어려움이 왔을 때 남편의 위로에, 또 다른 대안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나왔다.
- 브닌나가 "많이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하나님 앞에 안 올 사람은 안 온다. 하나님께서, 성령님께서 한나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한나는 그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다.
- 한나가 엘리 제사장이 오해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부르짖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한나를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구약의 교회를 살리는 사무엘을 보내 주셨다.
- 모든 것을 다 버린 룻, 고향에 있어 봤자 아무 쓸모없던 룻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와서 은혜를 간절히 구했을 때, 하나님은 보아스를 통해, 그 경건한 가정을 통해 지긋지긋한 사사 시대 300년의 타협과 타락의 시기를 끝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다윗을 보내 주셨다.
코로나가 마쳤을 때 드릴 고백
목사님은 예배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코로나가 끝났을 때 한나처럼 이런 고백과 이런 찬송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하나님, 없었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코로나를 보내 주셔서, 제가 믿음으로 살아오는 동안에 이 코로나 기간에 하나님 앞에서 저의 예배를 돌아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제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았습니다. 정말로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할지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마음을 낮추고 회개하며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 코로나가 마쳤을 때에 이런 회개의 열매를, 이런 하나님 나라의 좋은 열매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그 하나님을 정말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우리가 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이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우리들과 우리 교회가 되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의지하자.
-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씀으로 설교를 맺으셨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설교를 마치며 목사님은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시고, 번호를 붙이지는 않으셨지만 다음 내용으로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다.
- 한나와 같은 간절함 — "하나님, 저희에게도 한나와 같은 간절함과 은혜를 주십시오."
- 환난 속의 더 큰 은혜 — 코로나의 위험뿐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사실은 환난과 역경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더 컸다는 것을 지금 발견한다. 이 코로나를 통해 더 큰 은혜를 주실 줄 믿는다. 더 값진 믿음의 삶을 살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 예배의 회복 — "하나님, 우리의 예배를 속히 회복시켜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환난 중에 가난한 자들의 애통함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구하셨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어려움과 역병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이고 은혜인 것을 믿으며, 그것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시간이 되게 하시기를, 그냥 살았을 때가 아니라 이 시기를 허락하심으로 우리의 영혼과 삶이 하나님 앞에서 더 깊은 믿음의 자리에 이르게 하시기를 기도하셨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했고, 믿음의 눈으로 삶을 돌아보면 성공하고 번영하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억울하고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고 풍성하게 깨닫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를 기억했다. 코로나를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허락하신 것,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하나님의 때에 끝내시고 정리하실 것을 믿는다고 고백했다. 한나와 같이 이 시기를 지날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코로나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고난과 어려움의 시기를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해 주시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와 섭리를 경험하게 해 주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감사하며 찬송합니다"라는 신앙의 고백을 가지고 코로나의 끝에서 주님을 만나고 예배할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시간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시간, 믿음의 시간, 연단의 시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셨다.
(마무리 기도 부분은 음악이 함께 흘러 자막이 군데군데 끊겨 있다. 뜻이 통하는 범위에서 정리했다.)
5. 성경 본문 (사무엘상 1:1-11)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1:1 |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엘가나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로함의 아들이고, 엘리후의 손자, 도후의 증손, 숩의 현손이며, 에브라임 사람이라고 소개된다. |
| 1:2 |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다. 한 사람은 한나, 한 사람은 브닌나다.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
| 1:3 | 엘가나는 해마다 자기 성읍에서 실로로 올라가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고 제사를 드렸다. 거기에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있었다. |
| 1:4 | 엘가나는 제사를 드리는 날에 제물의 분깃(몫)을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아들과 딸에게 나누어 주었다. |
| 1:5 |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었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한나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 |
| 1:6 |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한나의 적수인 브닌나가 한나를 몹시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했다. |
| 1:7 | 해마다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었다. 브닌나가 격분시키므로 한나는 울고 먹지 않았다. |
| 1:8 | 남편 엘가나가 말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
| 1:9 |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뒤에 한나가 일어났다. 그때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다. |
| 1:10 |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며 통곡했다. |
| 1:11 | 한나가 서원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기억하시고 잊지 않으셔서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머리 깎는 칼)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했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세 사람, 그리고 사사 시대
본문에는 세 사람의 인물이 있다. 그중 핵심적인 사람은 한나다. 한나 곁에는 가까운 사람이 두 명 있다. 남편 엘가나와 브닌나다.
엘가나는 레위 지파 사람이다
-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를 보면 엘가나는 레위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 (자막에는 "역대하"로 들린다. 8장 참조)
- 목사님은 사무엘에 대한 서원(자막에는 "사무엘의 맹세"로 들림)과 관련해서 엘가나가 레위 지파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해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사무엘서의 시대는 사사 시대다
- 목사님은 이것을 꼭 기억하라고 하셨다. 사무엘상에서 사울 왕에게 기름을 부을 때까지 사무엘서를 읽을 때 "우리는 사사 시대를 읽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 사사 시대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 룻기다. 룻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 똑같은 사사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 오늘 본문인 사무엘상 초반부다.
6-2. 엘가나 — 타락한 시대의 경건하고 자상한 남편
경건한 사람
- 사사 시대는 사람들이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타락하여,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기보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던 때다. 엘가나는 그런 시대의 경건한 인물이었다.
- 그는 매년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 때(목사님은 장막절로 추측된다고 하셨다) 온 가족을 데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와 제사를 드렸다. 성경은 그가 "매년 성소에 올라갔다"고 기록한다.
두 아내를 두게 된 사정
- 한나는 첫째 부인이었음이 분명하다고 하셨다. 엘가나는 한나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했다.
- "하나님께서 태를 닫으셨구나,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시지 않는구나" 하는 것은 엘가나도 한나도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그래서 두 번째 아내인 브닌나를 얻은 것 같다고 하셨다.
자상한 남편
엘가나는 두 번째 부인을 통해 자녀를 얻었지만, 경건한 남편일 뿐 아니라 아내에게 굉장히 따뜻하고 자상한 남편이었다. 한나가 큰 고통 중에 있을 때 그는 이렇게 위로했다.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으냐."
목사님은 우스갯소리를 하나 덧붙이셨다.
- 평소에 괴팍하고 아내에게 위로가 전혀 안 되던 남편이, 아이가 없어서 괴로워 죽겠는 아내에게 찾아와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나" 하고 말한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나쁘겠는가?
- 그러나 엘가나는 달랐다. "내가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 내가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니 아이가 없는 것으로 낙심하지 마시오." 그렇게 진심으로 위로하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아내를 대할 때에도 잘 돌보는 경건한 남편이었다.
"요즘도 이런 남편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하셨다. 지금부터 3천 년 가까운 옛날, 문화가 지금보다 좋지 않았고 특별히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타락한 시기에 이렇게 경건한 남편을 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6-3. 브닌나 — 받은 사랑과 은혜가 큰 사람
한나의 옆에는 브닌나가 있었다.
-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브닌나에게 "아들들과 딸들"을 주셨다고 기록한다. 그러니 최소한 아들이 둘 이상이고 딸이 둘 이상인 것이 분명하다. 브닌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네 명 이상의 아들딸을 선물로 받았다.
- 브닌나는 남편 엘가나의 특별한 사랑도 받았다. 4절이 정확하게 기록한다. 엘가나가 가족과 함께 제사를 드리러 갔을 때 제물의 분깃을 아내 브닌나에게 주었고, 브닌나에게서 태어난 모든 아들과 딸에게도 분깃을 나누어 주었다.
- 그러므로 브닌나는 하나님께, 남편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가 큰 사람이다.
6-4. 정반대의 두 태도 — 긍휼히 여기는 엘가나, 대적으로 여기는 브닌나
놀랍게도 엘가나와 브닌나는 한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준다.
| 사람 | 한나를 대하는 태도 |
|---|---|
| 엘가나 | 한나를 긍휼히 여긴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는 그 고통과 슬픔 중에 있는 한나를 진심으로 긍휼히 여기고 위로하고 사랑한다. |
| 브닌나 | 하나님과 남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도 한나를 자기의 원수, 대적으로 생각한다. 틈이 있을 때마다 임신하지 못하여 괴로운 한나에게 비난과 모욕과 조롱을 퍼붓는다. |
"브닌나는 조금 심각한 교인입니다"
- 평소에 집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한나를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도 좋은 것은 아니다.
- 그런데 브닌나는 남편과 온 가족이 하나님의 절기를 맞아 실로의 성소에 올라갔을 때, 그 성소에서 한나를 향하여 비난하고 조롱하고 모욕했다. 교회 생활은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한 것이다.
성전에 오를 사람은 누구인가
목사님은 시편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셨다(자막에는 "야고보서나 시편에 있는 말씀"으로 들린다).
- 시편 기자가 질문한다. "누가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갈 것입니까?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그리고 답한다.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정결하며 허탄한 데 마음을 두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사람, 말과 행실과 삶이 하나님의 장막에 거할 만한 사람이 성전에 거할 수 있다고 시편은 이야기하며 찬송한다.
- 그런 점에서 브닌나의 태도는, 그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의 언약 안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가를 심히 의심하게 만든다.
예수님의 말씀
- 예수님께서는 신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러, 예배드리러 왔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 드리는 것, 예배드리는 것을 중단하고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뒤에 와서 예배를 드리라.
- 마음에 미움과 질투와 시기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그런 예배자는 하나님께 적합하지 않다고 성경은 누누이 말씀한다.
- 브닌나가 받은 은혜와 브닌나의 실제 삶을 보면, 그가 정말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 언약 안에 살아가는 사람인가, 과연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여인이었는가를 심히 의심하고 걱정하게 된다.
6-5. 간단한 질문 — 누가 한나에게 더 유익한 사람이었는가
한나 주위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목사님은 간단한 질문을 던지셨다.
"결국 한나에게는 누가 더 유익하고 복된 사람이었습니까? 결국 한나를 복된 자리에 가게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답은 뜻밖이다. 한나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더 크게 경험하게 해 준 사람은 브닌나였다.
남편의 위로에 머물렀다면
- 만약 한나가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 엘가나의 위로와 사랑 안에 머물렀다면 사무엘은 우리에게 없었을 것이다.
- 한나의 괴로움이 컸다. 슬픔이 컸고 비통함이 컸다. 그럴 때마다 믿음 좋고 자상한 남편이 와서 위로해 주었다. 목사님은 엘가나의 위로를 이렇게 풀어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열 아들 있는 것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니 당신은 브닌나의 격동에 마음 쓰지 마시오. 내가 죽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고, 마치 아들이 있는 것처럼 내가 끝까지 잘 돌봐 줄 것이니 마음에 두지 마시오."
- 엘가나는 날마다 그렇게 위로했다. 만약 그 위로에 한나가 만족했더라면 단연코 사무엘서는, 사무엘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브닌나가 한나를 몰아붙였다
-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 브닌나가 한나로 하여금 남편 엘가나의 위로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계속 몰아붙였다.
- 남편의 위로를 받고 "이제 좀 안심하고 참을까" 싶은데 브닌나가 찾아와서 한나를 몰아붙였다.
- 어느 정도였는가? 한나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엉엉 소리 내어 비통하게 울 정도였다.
- 결국 브닌나의 "도움"을 통해, 브닌나의 악함을 통해 한나는 남편의 사랑과 위로에 만족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 은혜를 구해야 되겠다." 한나는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저에게 남편이 줄 수 없는, 남편의 사랑과 위로로 만족할 수 없는 슬픔이 있습니다. 이 슬픔과 고통을 제가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6-6. 한나의 서원 기도 — 고통의 크기가 드러난다
한나는 11절에서 서원하여 기도한다. 목사님은 이 서원 기도를 들어 보면 감탄하기보다, 한나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가 거기에 나와 있다고 하셨다.
우리가 예상하는 기도
"하나님, 아들 하나만 주십시오. 둘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만 주시면 만족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했을 것 같다.
한나의 실제 기도
한나는 그렇게 기도하지 않는다. 목사님은 한나의 마음을 이렇게 풀어 말씀하셨다.
- "하나님이 주셨다가 하나님이 가져가셔도 됩니다. 아니, 제가 드리겠습니다."
- "제 아들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한번 낳아 보고, 젖 뗄 때까지 3년이든 5년이든 그 기간만이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이 원통함과 억울함을, 이 모욕과 수치를 벗을 수 있는 그 은혜만 주시면 됩니다."
- "그 아들을 제가 계속 안 키워도 됩니다. 함께 살며 노후를 보장해 줄 아들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 "저의 소원은, 그냥 아들 한 번만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로 한나의 마음에는 슬픔과 고통이 가득 차 있었다. 남편의 위로와 사랑에 만족하고 자족하며 살았더라면 한나는 이 은혜의 자리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6-7. 신앙생활의 신비 — 은혜는 환난의 옷을 입고 온다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
- 믿음 생활을 할 때 집안에서나, 친척들 가운데서나, 사업할 때나, 교회에서나 나를 괴롭게 하고 이유 없이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
- 처음에는 밉다.
-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나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하나님의 은혜로 더 가까이 가게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목사님은 이것을 "신앙생활의 참 신비"라고 하셨다.
꼭 기억할 말씀
목사님은 성경이 야고보서를 통해 하신 말씀을 꼭 기억하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환난의 옷을 입고 우리에게 찾아올 때가 훨씬 많습니다."
- 하나님은 나에게 환난과 고통을 주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찾아오는 모든 환난과 억울함과 고통과 원수와 괴로움을 통해서, 기대하지 않았던 은혜로 이끄신다. 이런 환난, 이런 질병, 이런 어려움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더 큰 은혜의 자리로 우리를 반드시 이끌고 가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 사무엘서의 시작은 하나님이 바로 그런 하나님이심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 슬픔 가운데, 어려움 가운데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예상하지 못했던 은혜를 주시는 분이다. 사무엘서는 그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있다.
6-8. 사사 시대 300년과 두 경건한 가정
한나의 이야기는 사사 시대 때의 이야기다.
30년, 50년이면 끝났어야 할 시대
- 정말로 여호수아와, 여호수아와 함께했던 장로들과 함께 믿음으로 순종했다면 사사 시대는 30년, 50년이면 끝이 나야 했다.
-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고, 여호수아와 함께 믿음으로 살았던 장로들이 죽고 난 다음에 구약 교회의 신앙 상태는 믿음에서 떨어졌다.
- 하나님의 말씀에 전심으로 순종하기보다, 말씀을 따르면서도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문화가 되었다.
- 세상과 싸워 믿음으로 살기보다, 세상의 문화를 옆에 두고 가나안 족속들을 바로 이웃에 두고 그들과 함께 섞여 사는 것이 이스라엘의 문화가 되었다.
- 30년, 50년 만에 끝내야 할 사사 시대가 300년이라는 세월을 흐르게 되었다.
- 그 300년 동안 하나님을 향한 정상적인 예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각자 자기가 좋은 대로, 내 생각에 맞는 편한 예배를 드리며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영적 타락의 시기에 빠졌다.
지나가듯 나오는 짧은 성경 — 룻기와 사무엘상 초반부
성경은 사사 시대를 쭉 설명하면서 지나가듯이 짧은 이야기를 내놓는다. 그것이 룻기와 사무엘상 초반부다.
- 사사 시대는 언제 마무리되는가? 그 암울하고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다 무너지고,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게 되는 것은 다윗 왕 때에 들어와서다.
- 그 다윗이 누구를 통해 태어나는가? 이방 여인 룻을 통해서 다윗이 등장한다.
사사 시대의 암울한 시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두 경건한 가정을 소개한다.
| 가정 | 목사님의 설명 |
|---|---|
| 보아스와 룻 | 보아스라는 사람이 있다. 일꾼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있고, 그의 믿음 생활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한나보다도 더 비참하고 한나보다도 더 소망이 없는 이방 여인 룻이 그 보아스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간다. 하나님은 그 가정을 통해 사사 시대를 완전히 끝내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을 시작하는 다윗을 주신다. |
| 엘가나와 한나 | 사사 시대의 암울한 시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떠났다. 한나는 임신하고 싶으나 그 은혜를 받지 못했다. 그 애통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 저의 이 고난과 슬픔에서 하나님만이 저를 도울 수 있습니다."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와 간절히 기도하며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한 아들을 주셨다. |
그들은 큰일을 하려고 기도한 것이 아니다
- 한나는 "사무엘을 달라"고 기도한 적이 없다. "하나님, 어떤 아들이든 좋으니 그냥 아들 하나만 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 룻은 "다윗을 낳겠다"는 마음으로 이스라엘로 온 것이 아니다. 그냥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며, 그 날개 아래 피하러 왔다.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 아무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전심으로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이 있다.
- 모든 사람이 다 바알을 섬기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 같더라도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은 있다.
-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하며 은혜를 구하는 보아스와 룻이 있고, 엘가나와 한나가 있다. 변변치 않아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를 간절히 구하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도구로 쓰임받는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6-9. 한나가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
한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똑같은 도전과 고백을 하고 있다.
"환난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질병과 고통이 있습니까? 남편의 사랑과 위로에 만족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데까지 나오십시오."
- 그러면 평안했을 때, 형통했을 때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신다.
- 그것이 사무엘서를 시작하면서 보게 되는, 우리를 회복시키시고 교회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 그 은혜가 어떤 옷을 입고 오는가? 고통과 환난을 통해서 우리에게 찾아온다.
6-10. 코로나 — 하나님은 코로나와 싸우지 않으신다
코로나19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다. 코로나19가 지나면 예배나 신앙생활이나 교회가 어떻게 바뀔지 많은 사람이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추측하며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은 한 가지이고 분명하다.
- 하나님께서는 코로나와 싸우지 않으신다.
- 하나님은 코로나를 섭리하시고 주장하신다.
- 하나님과 싸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 가운데 있다.
- 하나님은 형통할 때뿐 아니라 환난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형통할 때 경험하지 못했던 큰 은혜로 반드시 이끌고 가신다.
교인들과 나눈 이야기
교인들과 이야기할 때 이런 말씀들을 하셨다고 한다.
- "코로나를 지나면서 보니, 우리가 믿음 생활을 올바르게 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하도 답답하셔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허락하신 것 같다."
- "이 시기를 통해 내가 이때까지 어떤 믿음 생활을 했는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회개하며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 같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평소에 믿음 생활과 교회 생활을 너무 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보내 주셔서 좀 쉬게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우리의 질문
-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질병과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안에서 모든 일상적인 활동이 중단되어 있다.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하나님, 코로나 바이러스를 왜 우리에게 허락해 주셨습니까?"
-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시작하셨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끝내실 때가 있음을 정말로 믿는다.
- 그런데 하나님이 이 시기를 왜 우리에게, 교회에 허락해 주셨는가? 이것이 우리의 질문이다.
6-11. 당연히 여겨 왔던 예배를 돌아본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당연히 여겨 왔던 예배에 대해 돌아보고 있다.
- 내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렸는가.
- 주일 예배 때의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 하나님은 가정에서의 나의 예배가 어떠했는지도 돌아보게 하신다.
-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바깥에 쓰는 시간이 줄어들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돌아보고 있다.
- 직장에서,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예배를 드리며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가인의 예배와 아벨의 예배
- 하나님은 가인의 예배를 거절하셨다. 가인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고, 가인과 같은 예배자를 받지 않으셨다.
- 하나님은 아벨의 예배를 받으시고, 아벨과 같은 예배자를 열납하셨다.
- "하나님 보시기에 제가 이때까지 하나님 앞에 드렸던 예배, 교회 주일 예배, 가정에서의 예배, 직장에서의 예배, 모든 사람과의 관계 속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정말로 열납하시는, 기꺼이 받으시기를 원하셨던 예배였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돌아보고 있다.
- 하나님께서 정말로 기뻐하시고 언제나 기쁘게 받으셨던 예배라면, 왜 이 예배를 중단하게 하시고 예배로 모이는 것을 힘들게 하셨을까.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돌아보고 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 — 온라인 예배가 길어질 때
목사님은 먼저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교인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신뢰한다"고 하시고, 그런 은혜를 교회에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고 하셨다. 그러고 나서 노파심에 하는 말이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연약함이 있다. 온라인 예배가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 "온라인으로 예배드려도 큰 지장은 없네."
- "굳이 먼 거리를 자녀들과 함께 올 필요도 없고, 그냥 집에서 일어나서 예배드려도 집중해서 드리니까 한결 괜찮네."
- "수요 기도회도 없어지고, 새벽 기도회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고, 소그룹 모임(자막에는 '속으로 모임'으로 들림)도 굳이 나갈 필요 없고, 그래도 이 정도로 하면 어느 정도 되겠네."
이런 생각이 우리의 연약함을 이용하고 파고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이 질문을 솔직하게 던진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내가 편한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말씀하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6-12. 교회의 생명은 예배에 있다
없어져도 되는 것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
- 목사님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교회의 모든 활동이 다 중단되어도 저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다. 성경 공부도 없어져도 되고, 기도회도 없어져도 되고, 소그룹 모임이나 다른 여러 활동이 없어져도 된다.
- 그러나 교회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다.
모든 활동이 향하는 곳
- 교회의 모든 것, 성경 공부든 기도회든 소그룹 모임이든, 이 모든 것은 무엇을 향해 가는가? 성경 공부와 기도와 교제와 소그룹 모임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자라기 위해 그것들이 있다.
-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나아간다.
- "하나님, 저는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찾으시고 기뻐하시는 예배자로 살기 원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최고의 목표다.
- 그 신앙 고백을 하기 위해 우리는 주일마다 모인다.
예배가 삶으로 이어진다
-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린 사람이 그 예배의 정신을 가지고 가정에서 자녀들을 돌보고, 가정 예배를 드리며 믿음으로 살아간다.
- 그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직장에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예배자로 살아간다.
- 그런 신앙인으로 서게 하는 것이 교회이고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의 생명은 예배에 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런 은혜의 자리로 불러 주신다. "이 예배가 나의 생명이구나. 교회의 생명이 여기에 있구나.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는 주일 예배뿐만 아니라 내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구나."
이어서 목사님은 "한나를 주목해 보십시오"라고 하시며 결론(3장)으로 들어가셨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사사 시대 (주전 약 14~11세기)
- 여호수아가 죽은 뒤부터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까지의 시기다. '사사(士師)'는 하나님이 위기 때마다 세우신 지도자로, 재판하고 다스리며 적에게서 백성을 구해 내는 일을 했다(옷니엘,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 등).
- 사사기는 이 시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17:6, 21:25). 설교에서 여러 번 쓰신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가 이 말씀이다.
-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섬겼다"는 기록(수 24:31, 삿 2:7)과, 그 세대가 죽은 뒤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다는 기록(삿 2:10)이 설교에서 말씀하신 내용의 배경이다. 가나안 족속을 다 쫓아내지 않고 섞여 살게 된 일은 사사기 1-3장에 나온다.
- 사사 시대의 길이를 설교에서는 300년이라고 하셨다. 사사 입다도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산 지 300년이라고 말한다(삿 11:26). 다만 사사 시대 전체의 길이는 출애굽 연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약 200년에서 350년까지 견해가 갈린다.
사무엘 —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를 잇는 사람
| 시기 | 사건 | 성경 |
|---|---|---|
| 사사 시대 말 | 한나의 기도와 사무엘의 출생. 젖을 뗀 뒤 실로의 엘리에게 맡겨짐. | 삼상 1장 |
| 소년 시절 | 실로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 | 삼상 3장 |
| 장성한 뒤 | 온 이스라엘의 선지자이자 사사로 다스림. | 삼상 3:20, 7:15-17 |
| 노년 | 백성이 왕을 요구함.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첫 왕으로 세움(주전 약 1050년). | 삼상 8-10장 |
| 그 뒤 | 사울이 버림받자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기름을 부음. | 삼상 16장 |
설교에서 "사울 왕에게 기름을 부을 때까지는 사사 시대를 읽고 있다"고 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로 불린다(행 13:20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룻기와 다윗의 족보
-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 1:1)라는 말로 시작한다. 설교에서 룻기와 사무엘상 초반부를 같은 시대의 이야기로 묶으신 근거다.
-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났고, 오벳은 이새를, 이새는 다윗을 낳았다(룻 4:17-22).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다. 이 족보는 예수님의 족보로 이어진다(마 1:5-6).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
사사 시대의 일이 아니라 훗날 북이스라엘 아합 왕 때(주전 9세기)의 일이다. 선지자 엘리야가 "오직 나만 남았다"고 탄식했을 때 하나님이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자"라고 답하셨다(왕상 19:18, 롬 11:4). 설교에서는 어느 시대에나 하나님이 남겨 두신 믿음의 사람들이 있다는 뜻으로 인용하셨다.
2020년 6월의 상황
이 설교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퍼진 2020년 상반기에 하신 것이다. 당시 한국의 많은 교회가 모이는 예배를 줄이거나 온라인 예배로 바꾸어 드리고 있었고, 설교 속 "온라인 예배가 길어지고 있다", "예배를 속히 회복시켜 주십시오"라는 말씀이 그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에브라임 산지 | 가나안 땅 중앙부의 산악 지대.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이며 실로와 벧엘이 이 지역에 있다. |
| 라마다임소빔(라마) | 엘가나의 고향(삼상 1:1). 삼상 1:19에서는 '라마'라고 부른다. 사무엘이 태어나고 평생 살며 다스리다 묻힌 곳이다(삼상 7:17, 25:1). 정확한 위치는 학자들의 견해가 갈린다. |
| 실로 | 여호수아 때 회막(성막)을 세운 곳(수 18:1). 사사 시대 내내 이스라엘의 예배 중심지였고 언약궤가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져 있다. 엘가나 가족이 해마다 올라간 "성소"가 이곳이다. 훗날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뒤 쇠퇴했다(삼상 4장, 렘 7:12). |
| 베들레헴 | 유다 땅의 성읍. 룻기의 무대이며 보아스가 살던 곳, 훗날 다윗이 태어난 곳이다. |
| 모압 | 사해 동쪽의 나라. 룻의 고향. 설교에서 "고향에 있어 봤자 아무 쓸모없던 룻"이라고 하신 그 고향이다.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한나 | 이름의 뜻은 '은혜'. 엘가나의 아내이며 사무엘의 어머니. 사무엘을 드린 뒤 하나님이 돌보셔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다(삼상 2:21). 한나의 찬송(삼상 2:1-10)은 훗날 마리아의 찬송(눅 1:46-55)과 닮은 점이 많다. 설교 결론에서 "한나처럼 이런 찬송을"이라고 하신 것과 이어진다. |
| 엘가나 | 한나의 남편. 본문 1절은 그를 '에브라임 사람'이라 하고, 역대상 6장의 족보(6:22-28, 33-38)는 그와 사무엘을 레위 지파 고핫 자손의 계보에 넣는다. 레위인은 따로 땅을 받지 않고 여러 지파의 땅에 흩어져 살았으므로(수 21장), 에브라임 땅에 살던 레위인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
| 브닌나 | 엘가나의 다른 아내. 자녀가 여럿 있었다. 본문 6절은 그를 한나의 '적수'라고 부른다. 성경은 한나가 첫째 부인이라고 직접 밝히지는 않으나, 2절에서 한나의 이름이 먼저 나오므로 한나가 첫 아내였고 자녀가 없어 브닌나를 맞았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설교도 같은 방향이다. |
| 사무엘 | 이름은 흔히 '하나님이 들으셨다' 또는 '하나님께 구하였다'는 뜻으로 풀이한다(삼상 1:20). 선지자이자 제사장 역할을 한 마지막 사사.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 |
| 엘리 | 실로 성소의 대제사장이자 사사(삼상 4:18). 한나가 입술만 움직이며 속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고 술 취한 줄로 오해했다가, 사정을 듣고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다(삼상 1:12-17). 설교의 "엘리 제사장이 오해할 정도로"가 이 장면이다. |
| 홉니와 비느하스 | 엘리의 두 아들. 제사장이면서 제물을 함부로 다루는 등 악을 행했다(삼상 2:12-17). 실로의 예배가 어떤 형편이었는지 보여 준다. |
| 룻 | 모압 여인. 남편을 잃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와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했다(룻 1:16). |
| 보아스 |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 일꾼들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는 인사를 나누고(룻 2:4), 이삭 줍는 룻을 보호하며 배려했다(룻 2:8-16). 설교에서 "일꾼들에 대한 태도"라고 하신 장면이다. |
| 다윗 |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주전 약 1010~970년). "내 마음에 맞는 사람"(삼상 13:14, 행 13:22)이라 불린다.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예배를 정비했다. |
| 여호수아 |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지도자. |
| 가인과 아벨 | 아담의 두 아들.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창 4:3-5). 성경이 제물보다 사람을 먼저 말하는 점을 눈여겨볼 만하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히 11:4). |
7-4. 문화
자녀 없음의 고통
고대 이스라엘에서 자녀는 하나님의 복이자 기업이었고(시 127:3), 집안의 이름과 땅을 잇고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존재였다. 자녀가 없는 여인은 큰 수치와 불안 속에 살았다. 라헬은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했다(창 30:23). 설교에서 한나의 기도를 "이 모욕과 수치를 벗을 수 있는 은혜"로 풀이하신 배경이다.
두 아내
구약 시대에는 아내에게 자녀가 없을 때 대를 잇기 위해 다른 아내를 맞는 일이 있었다. 성경은 이런 일을 기록할 뿐 권하지 않으며, 사라와 하갈(창 16장), 레아와 라헬(창 29-30장)의 경우처럼 그런 가정에는 늘 시기와 다툼이 따랐음을 보여 준다.
해마다 올라가는 절기
율법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가 해마다 세 번(무교절, 칠칠절, 초막절) 하나님 앞에 나아오라고 명한다(출 23:14-17, 신 16:16). 본문은 엘가나가 올라간 절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한 해의 추수를 마치고 지키는 초막절(장막절)로 추측하는 견해가 있고, 설교에서도 그렇게 추측된다고 하셨다.
제물의 분깃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고 일부는 제사장이 받으며, 나머지는 제사를 드린 사람과 가족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 먹는 제사다(레 7:11-18). 본문 4-5절의 '분깃'은 이 식사에서 식구마다 받는 고기의 몫이다. 5절에서 한나가 받은 몫을 개역개정은 "갑절"이라고 옮긴다(이 히브리어 표현은 뜻을 정하기 어려워 번역마다 차이가 있다).
젖 떼기
고대 근동에서는 아이를 대개 두세 살 무렵까지 젖을 먹였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뗄 때까지 집에서 기른 뒤 실로로 데려가 엘리에게 맡겼다(삼상 1:22-28). 설교에서 "젖 뗄 때까지 3년이든 5년이든"이라고 하신 것이 이 일을 가리킨다.
삭도를 대지 않음 — 나실인
머리를 깎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별하여 드린 나실인의 표지다(민 6:1-8). 나실인은 보통 일정 기간만 서원했으나, 한나는 아들의 "평생"을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삼손(삿 13:5)도 날 때부터 나실인이었다.
레위인과 서원
레위인은 본래 성막 일을 맡은 지파지만, 일정한 나이가 된 뒤 정해진 기간 동안 봉사했다(민 4:3, 8:24-25). 한나의 서원은 그것을 넘어 아이를 어릴 때부터 평생 성소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율법에 따르면 아내의 서원은 남편이 듣고 반대하면 무효가 될 수 있었는데(민 30:6-15), 엘가나는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며 한나의 서원을 받아들였다(삼상 1:23).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섭리(攝理) |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존하시고 다스리시며 뜻하신 목적으로 이끄시는 일. 좋은 일뿐 아니라 환난과 질병까지 하나님의 손 밖에 있지 않다는 고백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설교의 "하나님은 코로나와 싸우지 않으시고 섭리하신다"가 이 뜻이다. |
| 주장(主掌)하심 | 주인으로서 맡아 다스리심. |
| 서원(誓願) |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거나 행하겠다고 스스로 약속하는 것. 한번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민 30:2, 전 5:4-5). |
| 만군의 여호와 | 하늘과 땅의 모든 군대를 거느리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의 칭호. 성경에서 사무엘상 1:3에 처음 나오며, 한나가 11절 기도에서 이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른다. |
| 태를 닫으심 | 본문 5-6절의 "여호와께서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표현. 성경은 한나의 불임을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일로 말한다. 사라, 리브가, 라헬, 엘리사벳처럼 오래 자녀가 없던 여인에게서 구원 역사의 중요한 인물이 태어나는 일이 성경에 거듭 나온다. |
| 격분·격동 | 본문 6-7절에서 브닌나가 한나를 "격분하게" 했다는 말. 일부러 자극하여 마음을 괴롭게 한다는 뜻이다. 옛 번역(개역한글)은 "격동"이라고 옮겼고, 설교에서도 이 말을 쓰셨다. |
| 긍휼(矜恤) | 불쌍히 여겨 돌보는 마음. |
| 언약과 언약 백성 | 하나님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맺으신 약속과, 그 약속 안에 있는 사람들. 설교에서 브닌나를 두고 "언약 안에 들어와 있지만 언약의 백성으로 살고 있는가"를 물으신 것은, 겉으로 속해 있는 것과 실제로 그 은혜 안에서 사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
| 구약의 교회 | 구약 시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이 하나로 이어진다고 보는 개혁교회 전통의 표현이다(행 7:38 "광야 교회"). |
| 성전에 오를 자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시 24:3-4). 시편 15편도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라고 묻는다. 설교에서 풀어 인용하신 말씀이다. |
| 예물과 화목 |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
| 환난과 시험에 관한 야고보서 말씀 | 설교에서 장절은 밝히지 않으셨다. 관련 구절로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 1:2-3),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약 1:12)가 있다. |
| 신령과 진정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24). 옛 번역은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옮겼다. 설교의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도 이 말씀에서 온 표현이다. |
| 열납(悅納) | 기쁘게 받아들이심. |
| 삶의 예배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설교의 "내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통한다. |
| 하나님의 날개 아래 | 보아스가 룻에게 한 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2). |
| 안식 |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참된 쉼, 곧 구원의 완성을 가리킨다(히 4:1-11). |
| 재림(再臨) | 예수님이 세상 끝날에 다시 오시는 것. |
| 연단(鍊鍛) | 쇠를 불에 달구어 두드리듯 어려움을 통해 믿음이 단련되는 것(롬 5:3-4, 벧전 1:7). |
| 노파심(老婆心) | 지나치게 걱정하는 마음을 겸손하게 이르는 말.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는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특히 엘가나가 한나를 위로하는 대목과 한나의 서원을 풀어 말씀하신 대목, 그리고 음악이 함께 흐르는 마무리 기도 부분은 자막이 많이 깨져 있어 뜻이 통하는 범위에서 정리했습니다.
- 자막은 "세 사람의 … 인물이 있습니다"라는 문장 중간에서 시작합니다. 그 앞에 도입 말씀이 더 있었는지는 자막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 엘가나가 레위 지파임을 말씀하시면서 근거로 드신 성경이 자막에는 "역대하"로 들립니다. 엘가나와 사무엘의 레위 족보가 실린 곳은 역대상 6장입니다. 자막의 인식 오류인지 말씀 중의 착오인지는 자막만으로 알 수 없어 6장에는 "역대기"라고 적었습니다.
- 같은 대목의 "사무엘의 맹세"라는 자막은 사무엘을 드리겠다는 한나의 서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정리했으나 자막만으로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 성전에 오를 자에 대한 말씀을 인용하실 때 자막에 "야고보서나 시편에 있는 말씀"이라고 들립니다. 인용하신 내용은 시편(24편, 15편)의 말씀입니다.
- 자막의 "추후 기도"는 수요 기도회로, "속으로 모임"은 소그룹 모임으로 옮겼습니다. "속으로 모임"은 '소그룹 모임'일 수도 있고 다른 이름의 모임일 수도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 다윗을 설명하신 대목의 자막에 "출애굽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처럼 들리는 부분이 있는데, 앞 낱말이 분명하지 않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으로만 적었습니다.
- 설교에서는 4절을 들어 브닌나가 남편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6장에는 말씀하신 그대로 적었습니다. 참고로 본문 4절은 브닌나와 그 자녀들에게 분깃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이어지는 5절은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하여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다고 기록합니다.
- 절기를 장막절로 보신 것, 한나가 첫째 부인이라는 것은 목사님도 "추측된다", "분명하다"고 하신 해석이며 성경이 직접 밝히지는 않습니다. 사사 시대의 길이(300년)도 학자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와 라마다임소빔의 위치 등은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